1. 규칙제시형
1) 회문체(回文體)
회문체란 내리 읽으나 치읽으나 의미가 통하는 형태의 시이다. 그러면서도 평측이나 압운은 지켜야 하니 제한이 몹시 까다롭다. 특별한 경우 바둑판 처럼 시문을 배열한다든지 중앙으로부터 선회하여 읽는다든지, 순화 반복하여 읽어야 의미가 통한다든지 하는 것도 있다.
회문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진 나라 여자 소혜(蘇惠)가 멀리 있는 그녀의 남편을 그리며 지어 보냈다는<回文昶璣織錦詩>이다. 이것은 별자리의 문양 위에다가 가로 세로 각 29자씩을 놓아 모두 8백41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종횡으로 혹은 회전하거나 비스듬히 읽으면 2백여 수의 아름다운 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석주 권필의 시이다.
저녁 조수에 비오려는지 찬 모래톱 어둡고
먼 변방 가을 구름에 기러기는 짝지어 우짖네.
쓸쓸히 사립 닫으니 산 해는 지고
소슬한 저문 잎은 빈 강에 떠지네.
潮回欲雨寒沙瞑 遠塞秋雲叫雁雙
廖寂椉扉山日落 蕭蕭暮葉隨空江
이를 거꾸로 읽으면,
강 비어 지는 잎은 저물녁에 쓸쓸하고
지는 해에 산 사립은 닫아 적료하도다.
짝 기러기 우는 구름, 가을 변방은 멀고
어둔 모래사상 찬 비에 저녁 조수 밀려오네.
江空隨葉暮蕭蕭 落日山扉椉寂廖
雙雁叫雲秋塞遠 瞑沙寒雨欲回潮
늦가을의 강물을 묘사하여 내면의 황량함을 교감적 심상으로 드러내 보인 작품이다. 바로 읽으면 종원이근(從遠而近)이요, 뒤집어 읽으면 유근급원(由近及遠)이나 심회야 한가지다. 찬 모래톱을 돌아 저녁 조수는 밀려오고, 가을 하늘 먼 변방으로 기러기는 날아간다. 가고 또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강 위로 떠지는 가을 잎이 서글플 것도 없건만, 이룬 것 없이 홀로 사립 닫고 앉은 심사야 무심할 수만도 없다. 제목을<晩秋>이라 하였는데, 시인의 면밀한 배려는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읽으면「가을도 늦어」요, 뒤집으면「늦가을」이 된다. 회문은 바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의미와 성조의 연결이 부드러워 빽빽한 태가 없어야 한다.
2) 장두체(藏頭體, 일명 玉蓮環)
변이형태 한시 가운데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 가운데 하나가 장두체이다. 장두체란 문자 그대로 머리를 감추었다하여 각 구 첫 글자에 비밀이 감추어진 형태의 시형이다. 혹 글자 사이의 연결성에 착안하여 옥련환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형식은 파자(破字) 유희의 일종으로 말꼬리 이어가기의 응용형태이다. 요컨데 매구 끝 글자의 일부를 취하여 다음 구 첫 자에 사용하는 것이다. 석주 권필이 세 수를 남겼고, 계곡 장유도 한 수를 남긴 바 있다. 이 가운데 석주의 작품을 살펴본다.
바람 먼지 옷 위로 불고 날은 황혼인데
여덟 해 전 옛 자취에 생각에 잠기네.
흙다리는 산 놀에 가려 허공 중에 푸르고
골짝의 솔 그늘은 비온 뒤라 서늘해라.
가파른 소롯길서 절을 찾다가
작은 멧부리를 구름에 가린 집인가 했네.
옛 놀던 즐겁던 자취 스러져 간데 없어
한 곡조 크게 부르니 눈물만 옷깃 적시네.
衣上風矣日色黃 八年陳迹入思量
土橋山靄空中碧 石澗松陰雨後凉
小路崎埘壽野寺 寸岑依約想雲莊
壯遊奇樂消磨盡 一曲高歌淚滿裳
제목이<송경진중회구유>이다. 송도 가는 길에潮回欲雨寒沙瞑 옛 놀던 곳을 지나며 지운 시다. 언뜻 보면 여느 7언 율시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각 구의 끝자와 첫자가 꼬리따기 식으로 연결되고 있음이 관찰된다. 즉「黃」에서 「八」을, 「量」에서「土」를, 「碧」에서 「石」을, 「凉」에서「小」를, 「寺」에서「寸」을,「莊」에서「壯」을,「盡」에서「一」을, 「裳」에서「衣」를 각각 따서 다음 구의 첫자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글자의 단순한 차용을 넘어 매구마다의 상상촉발의 매체로서 기법적으로 전환된단.
이러한 시의 창작은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채 암호를 숨겨 놓고, 독자들이 이를 찾아내 시인의 의도를 알아챌 때 문득 이루어지는 교호(交互)의 일체감 또는 암호풀기의 미적 쾌감을 동반한다. 평상적인 형식의 시 속에 비밀을 숨겨 놓았으므로 이를 알아채지 못한 독자는 시의 반분도 이해 못한 것이다.
3) 이합체(離合體)
이합체라는 명칭은 글자를 따로 떼어 다시 합쳐서야 하나의 글자를 이루는 형식적 제한에서 비롯되었다. 이합체는 어떤 의미에서 옥련환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몇 가지의 하위 분류가 가능하나 원리가 같으므로 전형적인 한 작품만을 예로 들기로 한다. 계곡 자유의 시이다.
흘러가는 세월 문득 이 몸 바꾸어
장차 한가로이 노닐만 해라.
천지의 소리를 귀여겨 들으니
귓가엔 떠들썩 칼 고르는 소리로다.
전쟁 때도 참으로 오래되어서
반쯤 센 터럭 어지러이 흩날리건만,
욕심 많은 저 명리의 사람은
밝은 해에 가벼운 갖옷을 뽐내네.
멋대로 즐기니 몸이 편하여
몸소 고기 잡고 나무를 하네.
창귀가 범에게 부림 당하듯
사람도 이따금 요귀를 만난다네.
머리 묶고 즐거이 만물을 보니
길하고 흉한 분별 모두 스러지네.
순박하게 겉치장도 마다 하나니
나무가 썩으면 무엇을 새기리오.
온 세상은 쫓아 다툼 좋아하여서
나와는 서로 맞지를 않네.
시와 글은 해 봐야 먼지만 날뿐
언어도 한같 싸움을 낼뿐
진실로 궁해도 도는 잃지 않으리
옛 사람도 이미 아득하건만.
어리석다 마음으로 속태우는 이
마음 속 언제나 애가 타리니.
爌年糬己改 且可閑逍遙
廳取天賴嗚 耳邊喧調刀 (1.3구 첫자를 반씩 합쳐「德」)
干時良己晩 二毛紛飄蕭
沓沓名利子 白日誇蟬貂 (5.7구 같은 방식으로 「水」가 됨)
弛置樂自更 也復親漁樵
璞鬼役於虎 人或遭昏妖 (9.11구 합쳐 「張」이 됨
結髮喜玄覽 吉凶窮長消
椎挠謝外飾 木朽安可彫 (13.15구 합쳐「維」가 됨)
擧世好趨競 與我不相要
時書資發塚 言語徒婥婥 (17.19구 합쳐 「持」가 됨)
固窮不失道 古人己寂蓼
惑哉內熱子 心姴長如焦 (21.23구 합쳐 「國」이 됨)
늙으막의 심정을 술회한 24구로 된 긴 호흡이 시다. 어지러운 세상, 사람들은 그저 번드르한 갖옷만을 뽐내고,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귀신에게 씌운듯 잊은 지 오래다. 논어에서는 군자의 삶의 자세를「窮不失義 達不移道」라 했다. 아무리 궁해도 의를 잃지 말고, 현달했다하여 도를 벗어나지 말라는 처세훈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공연한 허욕에 사로잡혀 속만 태우고 있질 않은가. 위 시는 이렇듯 고요히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담담한 시선이 독자를 명징한 깨우침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앞서 장두체의 경우와 같이 숨겨진 암호가 있다. 즉 매 홀수구의 첫 글자를 반씩 쪼개어 합치면 새로운 한 글자를 이루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1.3, 5.7, 9.11, 13.15, 17.19, 21.23 구의 첫 글자가 각기 쌍을 이루어 여섯 글자를 만들고 있다. 그 글자는 곧「德水張維持國」이다. 덕수는 그의 본관이요, 자유는 이름이며, 지국은 그의 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대한민국 넉 자를 두고 「대」하면 「대대로........」 하는 식의 문자 유희와 궤를 같이 한다. 속으로는 이런 장난기를 감추었으면서도 내용은 전혀 진중한 술회로 일관하고 있어 읽는 이에게 묘한 미적 쾌감을 잘 전달하고 있다. 또 개화기로 내려와 「매일신보」를 보면 7언절구 매 구 첫 자를「每日申報」로 한 창작도 볼 수 있는데, 다 같은 의식의 반영이다.
이상 예시(例詩)를 중심으로 간단히 규칙제시형의 잡체시들을 살폈다. 회문체와 장두체, 그리고 이합체들은 각기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평상적인 시 형식 속에 내재시키고 있다. 특히 회문시는 바로 읽든 뒤집어 읽든 의미의 전달에 이상이 생겨서는 안되니 고도의 언어구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창작에 있어서도 각 구절마다 뒤집어 읽을 때의 의미배려와 운자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므로 제한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장두체와 이합체는 각 구 끝자와 첫 자의 계기성과 홀수구 첫 자의 연결성이라는 내적 질서 아래 통어되고 있으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빛을 내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미적 쾌감으로 독자의 동기를 유발시킨다.
2. 글자삽입형
1) 수시(數詩)
수시란 춘향전의 십장가나 그밖에 오늘까지도 「하나하면......, 둘하면.......」식으로 불려지고 있는 글자삽입형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형식적 제한은 원래 매 홀수 구의 첫 자에 차례대로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삽입하여 시사(詩思)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응용하여 매구마다 차례대로 숫자를 삽입하는 변이형태도 전해진다. 다음은 <동문선>에 실려 전하는 만취정(晩翠亭) 조수(趙須)의 수시이다.
일생동안 병고에 괴로왔는데
이월에도 감기들어 목이 쉬었네.
삼일 밤을 끙끙대며 잠 못이루니
四大 等身 멀쩡한 몸 헛 것이로다.
오십에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육십인들 어찌 살 수 있으리.
칠정이 날마다 지지고 볶으니
팔환에 마침내 의지하리라.
구경도 참으로 보잘 것 없어
십년동안 한같 구슬피 탄식하네.
一生苦沈綿 二月患喉撲
三夜耿不眠 四大眞是假
五旬尙如此 六秩安可過
七情日煎熬 八還終當籍
九經眞自獠 十載徒悲咤
매 구의 첫 자에 차례로 숫자가 매겨져 있다. 홀 수 마다 숫자를 매겨나가는 정격에서 또 한번 이탈한 것이다. 운자는 그대로 지켜졌으므로 숫자의 질서만을 배제하면 여는 시와 다를 것이 없다. 감기로 잠까지 설치는 고통중에 병으로 살아온 일생을 돌아보며, 허무한 탄식을 토로한 것이다. 이러한 얼마간 장난기를 수반한 수시는 뒤에 개화기로 오면 10에서 그치지 않고 백, 천, 만, 억조까지 이르는 부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 병렬구조에 의한 수시도 있다.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의 작품이 그러한 예이다. <我有十三首>라는 제목의 모두 13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매 첫 구가「我有一輛車」로 시작하여, 매편의 진행에 따라 숫자가 순차적으로 불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 편은 가난함 가운데서도 안빈낙도의 정신으로 유유자적하는 삶의 여러 단면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수시는 비슷한 제재의 나열과 반복 가운데서 시적 긴장을 제고시키고 주제의 강화에도 묵시적으로 작용한다.
2) 건제체(建除體)
건제체는 송나라 포조(鮑照)란 이가 처음 지은 시체이다. 건제란 본디 술수가들이 建, 除, 滿, 平, 定, 執, 破, 危, 成, 收, 開, 閉 등 12진으로 날의 길흉을 정하던 것을 가리킨다. 건제체란 앞서 수시와 마찬가지로 홀수구 첫 자에 반드시 위의 순서대로 12자을 삽입하는 전 24구로 이루어진 형식의 시를 말한다. 권필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建德이 어찌 내 살 땅이리.
井州 또한 고향 아닐세.
이를 버려 다시는 생지말자.
생각하면 마음만 상하네.
금술잔 가득 술을 따르고
큰 소리로 노래하니 정이 북받쳐.
평생에 공 세워 나라에 갚을 뜻 품고
깨끗하고 굳센 마음 지녔어도,
정해진 분수는 피할 수 없어
험한 세상 길, 길 가를 따라갔네.
몽둥이 잡아들고 속된 무리 면하여
표주박 물로 선비의 길 즐겨.
부서진 집은 무릎 겨우 용납하고
살림은 등상이 남아 있을 분.
위태로운 때라 숨어삶이 알맞으니
부귀를 어찌 족히 바라랴
이루고 못이룸 마침낸 한 곳으로 돌아가고
만고의 일들 모두 허망하도다.
마음을 거두어 太和를 기르니
가슴 속에서 영묘한 빛을 발하네.
책을 열어 성현을 대하고
화상을 구해 맑은 향 살라,
문 닫고 한평생 끝마치리니
인간의 榮枯盛衰 다 잊는다오
建德豈吾土 井州非故鄕
除此勿復念 念之令人傷
滿酌金區羅 浩歌情激昻
平生請纓志 皎皎懷剛腸
定分不可逃 間關趨路傍
執杈免卒伍 飮瓢甘士常
破屋只容술 生理餘藤床
危時合隱帽 富貴安足望
成虧終一執 萬古俱亡羊
收心養太和 方寸發天光
改卷對聖賢 求畵粣淸香
閉戶了一生 榮枯都兩忘
홀수구 첫 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 데다 운자도 지켜야 하므로 앞뒤로 두 가지 제한을 받고 있는 셈이다. 첫구의 건덕은 [장자]에 나오는 도가적 이상향을 말하고, 둘째구의 병주는 나중에 유자로 돌아온 당나라의 승려시인 가도(賈島)와 관련된 지명이다. 그러므로 1.2구의 언술, 즉 건덕도 병주도 내가 머물 곳이 못된다는 것은 노불(老佛)을 부정하고 유가(儒家)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이다. 단 두대의 지명을 떠올려 전편의 주제를 확정짓는 함축적 표현은 한시의 용사(用事)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3) 팔음체(八音體)
팔음체란 것이 또 있는데, 주역 팔괘에 맞춘 金(鐘), 石(啓), 絲(絃), 竹(管), 匏(笙), 土(壎), 革(鼓), 木(皯槗) 등의 여덟 악기의 이름을 앞서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홀수구 첫 자에 삽입하는 형식이다. 진(陳)의 심형(沈炯)이 처음 지었다 한다. 장유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음악소리 요란히 여러 고을 거느려도
돌아보면 공연히 근심과 슬픔일레.
돌문으로 벼슬길 피한다지만
숙대집 속에서도 마음 편하네.
실과 베는 절로 쓰기에 맞고
솔새와 사초도 남줄만큼 있네.
대나무 꽃 열매를 맺지 않아도
봉황은 아침 허기를 참나니,
바가지로도 취하기 충분한데
구태여 금술잔을 찾을 것이랴.
흙 집도 움직임에 불편함 없고
나물 반찬 달기가 엿과도 같아.
가죽 띠 허리 늘어 구멍 자주 옮겼고
글은 버려 단지 홀로 즐기네.
나무가 재목되면 도끼질 당하는 법
처세의 방법은 서둘지 않는 걸세.
金奏薦雜縣 眩視空憂悲
石戶逃黃屋 蓬累中自怡
絲麻自中用 菅圸在所遺
竹花不成子 威鳳忍朝飢
匏樽可以醉 何必金屈扈
土室適偃仰 菜根甘如飴
革帶數移孔 休文灭自底
木材引斧斤 處世貴支離
또한 안빈낙도하는 자족의 삶을 노래하였다. 험한 음식 거친 잠자리인들 어떠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혁대의 구멍을 자꾸 고친다는 시인의 너스레는 오히려 푸근하게 독자의 마음을 감싼다.
이밖에도 쥐. 수. 호랑이 등 열 두마리 짐승을 간지의 수서에 따라 매구 삽입하는 십이진시(十二辰詩)가 있고, 별자리의 이름을 넣는 이십팔수가(二十八宿歌)란 것도 있다. 그밖에 사람의 이름, 고을 이름 등등 글자삽입형에는 매우 다양한 변이형태들이 있다. 대개 수시나 건제체, 팔음체 등은 비록 그것이 장난기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시 안에 십이진이나 팔음을 두루 갖춤으로써 보다 완벽한 형식미를 갖출 수 있다고 믿는 옛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다.
3. 이중적 언어사용형
1) 금언체(禽言體)
금언체란 새의 울음소리를 따서 지은 시이다. 다만 울음소리를 따되 단순한 음상 효과만을 추구하지 않고 한자의 표의성을 이용한 말장난pun의 일종이다. 송의 매성유(梅聖兪)가 <四禽言>을 지은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시습과 장유, 그리고 권필 등이 금언체의 시를 남기고 있다. 유몽인도 <십삼금언>을 남긴 바 있다.
예컨데 소쩍새를 「정소」(鼎小)라 하고 훈으로 「솥적」이라 읽어, 풍년이 되어 쌀은 많은데 밥 지을 솥이 작다는 의미로 활용한다든지, 뻐꾹새를 布穀으로 표기하고 나서 이 새가 파종기에 운다는 점을 환기하여 「씨뿌려라」의 의미로 독해하는 따위이다. 까마귀 울음을 「고악」(姑惡)으로 표기하여 두고 시어머니에 시달림을 받는 며느리의 원망을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또 주걱새는 「아욕사」(我欲死)라 하여 「나죽겠네, 나죽겠네」의 의미로 해독한다. 노고지리를 「부과자」(負鍋者)라 하여 「노구(鍋)를 질 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장유의 작품을 보자.
피죽 피죽
쌀은 적고 물은 많아 죽 만들기 어렵네.
재작년엔 물난리 작년엔 가뭄
세금을 걷기도 전 농부는 울음 우네.
죽 먹어 배 부를까 주림은 면하리니
그대여 싫다 마소 피죽도 드물다오.
稷粥 稷粥 米少水多粥難熟
前年大水往年旱 官租未輪農夫哭
喫粥不飽猶免饑 勸君莫壓稷粥稀
입은 많고 먹을 것은 없으니 양을 불릴 밖에. 물을 잔뜩 잡고 죽을 쑤니 제대로 수어질 까닭이 없다. 그나마 그렇게 연명이나 할 수 있다면 피죽도 마다할 처지는 못된다.
금언체의 시들이 보여주는 주요한 특징을 들라면 비교적 심각한 비판과 풍자를 담았거나 아니면 역설의 해학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여기에 등장하는 새울음 소리들이 우리말로 되어 있어, 같은 금언체라도 중국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장만영의 「소쩍새들이 온다/ 소쩍 소쩍 솥이 작다고.......」라고 한 <소쩍새>와 같은 작품을 보면 금언체의 문학적 전통이 현재에 계승되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2) 약명체(藥名體)
약명체는 글자삽입형의 변형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중의적 사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본항에서 다루기로 하였다. 당귀(當歸)나 반하(半夏) 따위의 약초 이름을 시구 가운데 슬쩍 삽입하는 방식이다. 권필의 작품을 하나 든다.
반하에 서울에 머무니
사람들은 병이 아직 안나았다 말하네.
다만 마땅히 고향에 돌아가
내낀 달빛에 앞 호수서 낚시질 하리.
半夏留京口 人言病未蘇
只當歸故里 烟月釣前湖
각 구마다 반하, 인언, 당귀, 전호 등의 약명을 넣고 있다. 이들 모두는 글자 자체의 의미로 쓰였을 뿐 다른 암시적 의미는 없다. 반하는「반하생」이라고 하는 하지에서 열 하루째 되는 절기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약초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언은 비상의 다른 이름으로 극독을 지녔으나, 극히 소량을 써서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당귀나 전호도 모두 담이나 감기의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초들이다.
3) 기타
그밖에 이중적 언어사용의 예는 한시에서 비교적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잡체의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조선 후기 김삿갓의 시는 절묘한 언어의 중의적 사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엄격히 말해 이들은 보고에서 규정하고 있는 잡체시의 범주를 벗어나지만 성격상 유사성 때문에 한 두 수 인용해 보기로 한다. 김삿갓의 시다.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서른) 객이
망할(마흔) 집에서 쉰 밥을 먹네.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일 있으료.
집아 돌아가 설은(서른) 밥 먹음만 못하리.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嫁三十食
방랑의 길목, 주린 창자를 채우려 밥을 청하니 쉰 밥을 내왔다. 사나운 인심이 고약하여 즉흥에서 뱉은 시이다. 1.2구의 스물, 서른, 마흔, 쉰의 점층에 의한 언어 구사도 그렇고, 일흔에 이르는 의미 연결도 절묘하다. 잡체시라 하더라도 앞서까지는 중국의 시인들 것이나, 우리 시인들 것이나 변별할 만한 기준이 없었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판연히 달라진다. 중국 사람들은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를 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김삿갓의 다른 유형의 파격시를 하나 더 보자.
하늘은 길어,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에 피어 있고
나뭇가지 그림자 반쯤 드리웠는데,
강 가 정자를 가난한 선비 지나다
크게 취해선 소나무 아래 엎어졌네.
달이 옮겨가자 산 그림자도 바뀌고
저자에선 利를 구해 사람들 돌아오네.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菊樹寒沙發 枝影半從地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月移山影改 通市求利來
범상히 읽어 나가면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경상을 시간의 전개에 따라 옮겨 저었을 뿐이다. 면밀한 독자들은 혹가다 부자연스런 한 두 글자가 눈에 거슬린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를 위와 같이 해석하기만 한다면 시인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원시를 다시 독음만 가지고 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천장엔 거미집, 화로에선 젓불내
국수 한사발에 (반찬은) (간)장 반종지
강정과 (속이) 빈 사과, 대추와 봉숭아
위리 사냥개, 통시(변소)에선 구린내.
시인은 이런 함정을 파 그럴듯한 의미로 겉포장을 해 놓고 독자를 기다린 것이다.
사실 이같은 유형의 시는 잡체시라기 보다는 파격시라 함이 옳다. 파격시만도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정도로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중적 언어사용이란 공통점 때문에 한데 논의해 보았다.
4. 파격형
1) 층시(層詩, 寶塔詩라고도 함)
층시는 「自一言至十言體」이니「三五七言體」등의 명칭으로 불리워진 것으로, 여기에도 여러가지 변이형이 있다. 처음 3.5.7의 홀 수로 자 수가 증가하던 것에서 한 자에서 열 자까지 나란히 점층되는 형, 그리고 아예 한 자에서 열 자까지 갔다가 다시 한 자까지 줄여나오는 형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었다. 더우기 우리나라에서는 「自一言至十八言」에 이르는 거작의 창작도 이루어진 바 있다. 이를 보탑시라고도 하는데, 글자를 한 자 한 자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 듯한 모습이 탑과 같은 모양을 한데서 온 명칭이다.
층시의 대표적인 창작은 석주 권필이 고산의 오우가를 연상시키는 松, 竹, 梅, 菊, 蓮을 주제로 한 5수를 남겨 가장 많고, 그밖에 혜심. 장유. 김양근 등에게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흔히는 자연물을 두고 읊은 것이 보통이지만 사람을 주제로 한 것도 있다. 다음은 고려 때의 승려 혜심의 시다.
사람.
사람.
업을 따라
몸을 받네.
괴로움과 즐거움은
괴로움과 즐거움은
악함과 선함의 인과로다.
사악함 망녕됨 따르지 말고
언제나 바르고 참되이 행하라
부귀라 하는 것 쌀 겨와 같다면
인의라 하는 것 갑옷과 투구로다.
하물며 오묘한 이치 깨쳐 참됨 얻으면
저절로 바탕이 바뀌고 정신도 맑아지리.
몸은 불. 바람. 땅. 흙이 아니며
마음 또한 인연과 염려, 티끌 먼지 아닐래라.
쌓은 태 없는 탑에 등불은 밤이 없고
뿌리 없는 나무 위에 꽃이 피니 늘 봄이라.
바람이 흰 달 가는 동안 누가 병들고 누가 낳았으며
구름이 청산과 합하니 어디가 옛 것이고 또 새 것인가.
사방으로 뚫린 한 길은 성현의 발자취요
수레에는 바퀴 달려 에나 지금이나 똑같이 전진하네.
원문을 탑 모양으로 쌓아 올리면 다음과 같다.
人
人
隨業
修身
苦樂果
善惡因
不循邪妄
常行正眞
粃糠兮富貴
甲胄兮仁義
況須參玄得眞
自然換骨淸神
體不是火風地水
心亦非綠慮垢猉
沒縫搭中燈燃不夜
無根樹上花發恒春
風磨白月兮誰病誰藥
雲合靑山也何舊何新
一道通方爲聖賢之所履
千車共轍故古今而同進
불교적 선리(禪理)를 담고 있다. 업을 받고 태어나는 인간, 현세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전생의 선악의 업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때의 부귀에 얽매여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 보다 인의의 길을 걸어「換骨淸神」하게되면, 무봉탑「無縫塔」에 등불이 환하고 무근수(無根樹)에 꽃이 핌과 같이 광명대도의 세계에서 노닐게 된다는 내용이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쌓아 놓으니 그 모양이 또한 무봉탑의 형상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현대시에도 시각적 효과를 노린 이런 시도가 없지 않았다. 조지훈의 시 <백접>은 바로 그런 예이다.
밤꽃불슬고정가병하너조기가작꽃별노한
진다픈요가슴들이촐쁜슴은피섬래
가피히로에거얀갔히노가葬는겨
리지운눈라花구사래을送밤
라눈물아辨나라숨되譜
물지픈고잊진진고
고가운히白뒤
슴喪지蝶
章않
아는
개화기에 오면 층시의 창작은 더욱 활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에 오면 전통 장르의 해체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일부 전통적 지식인들에게서 여러 가지 실험적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로「그림2」는 1915년「청춘」에 실렸던 작자 미상의<浮碧樓記>라는 작품이다. 판의 중심에 있는「樓.樓」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선회하면서 글자를 채워 마치 회문시판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는 한 자에서 열 자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한 글자까지 줄어들어, 보탑을 쌓듯 정리하면 마름모꼴이 된다.
층시는 말하자면 각 시체(詩體)를 조합해 놓은 것이다. 시인들은 창작의 과정에서 각 체를 두구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도 운자는 정확히 지켜져야 한다.
2) 6언시(六言詩)
6언시는 실제 고체시의 한 갈래이므로 파격형으로 분류할 것 없겠으나, 우리나라에서의 파격적 양상에 주목하여 여기서 다루게 되었다. 6언시는 작법에 있어 특별한 평측의 제한은 없고 용자(用子)에 있어 소리의 어울림과 균형을 중시하였다. 허자(虛字)의 사용을 꺼렸으므로 호흡이 길지 않았고 중도에 환운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구법(句法)은 2.4로 새기는 경우와 4.2로 새기는 두 가지가 있으며 4.2가 정격이라면 2.4는 변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언시는 여러 작가에 의해서 창작되었다. 손곡 이달이 8수의 6언시를 남겼고, 계곡 장유도 10를 지었다. 그밖에 한 두 수씩 지은 사람은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 송목관(松穆館). 이언진(李彦鎭)의 6언시이다. 그의 문집「송목관유고」에는 무려 1백57수의 6언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구법에 있어 3.3의 파격형이 주조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과감한 풍자와 시정(市井)생활의 현장적 묘사 등 기존 6언시의 관행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을 보자.
오는 것은 소, 가는 것은 말
길에다 오줌싸고 저자에 똥싸네.
선생의 콧구멍 청정도 하여
상 머리에서 향을 사르네.
來者牛去者馬 溺干塗糞干市
先生鼻觀淸淨 床頭焚香一穗
떠들썩한 저자거리의 모습과 거기서 풍겨나는 더러운 냄새, 이를 외며하고 들어앉아 냄새를 맡지 않으려 향을 피우는 시인의 불협화음은 죽기 전 자신의 원고조차 불사르게 했던 시대의 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에는 소 오줌과 말 똥따위가 천연스레 등장하고 있고, 구법(句法)도 구애됨 없이 제멋대로다.
3) 삼구시(三句詩)
삼구시는 글자 그대로 4구나 8구 등 배수의 규칙성을 무시하고 3구로 한 편을 마무리한 시이다. 시조의 양식적 특성을 도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시형은 과거에는 창작되지 않다가 개화기에 들어 그 모습을 나타낸다. 1906년 발간된「만세보」77호에 처음 삼구시가 나타나고 있다. 구시학인(求是學人)이란 필명의 작자가 지은 네 수 가운데 둘째 수를 감상한다.
푸른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 맹세했지.
다함 없는 큰 바위와 다락 앞 강물처럼.
전생에 행여 이승의 인연 있었을런지.
綠髮漥根誓百年
無窮長石樓前水
前生幸有此生綠
부부 사이의 백년 해로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형식상의 파격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푸른 머리 파뿌리 되도록」과 같은 시속어가 거리낌 없이 등장하고 있다. 구법에 있어서의 면밀성도 별로 염두에 넣지 않고 지어졌다. 더 이상 전통장르로서의 한시는 그 효용성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4) 연자시(聯字詩)
연자시 또한 개화기의 산물이다. 1910년<대한민보> 1백88호에 처음 소개된 연자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한 수의 시를 짓는 것이다. 한 구씩 돌려가며 짓는 연구시(聯句詩)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연자시는 한 사람이 한 글짜씩 지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이어서 더 까다롭다. 중간에 다른 사람을 위해 쉬운 글자를 놓기도 하고, 공연히 까다로운 글자로 골탕을 먹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릴레이식 창작이다. 시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어지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어진 한 수를 여기 소개한다. 제목은<蘆雁>이다.
가을 달, 바람에 불려 멋대로 왔다 갔다
갈대 꽃 구름처럼 강 가득 피었네.
드높이 날아보니 하늘은 넓어도
맑은 모래 그리워 벗 부르며 돌아오네.
秋月秋風任去來 蘆花如雲滿江開
高飛縱有天空闊 爲戀晴沙喚侶回
3구에 가서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이 발견되지만 전체적인 시상(詩想)의 전개에는 무리가 없다. 한 사람이「秋」하고 부르면 다음 사람은「月」하고 받는다. 그 옆에서 다시「秋」를 외치면 다음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風」을 외친다. 일곱번째 사람이「來」라 하는 순간 운자는 결정되고 2구와 4구의 끝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가 제한된다. 7명이 둘러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에 긴장하며 모여 노는 정황이 눈에 선하다.
이상 파격형의 시들을 살펴보았다. 층시는 시각적 창작 효과면에서 흥미를 끄는 경우라 할 수 있고, 6언시는 한시 장르의 형질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국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삼구시와 연자시 등은 한시가 전통 장르로서의 존립 근거를 상실했음을 반영하는 실험적 시도로 해석된다. 그밖에도 개화기에 시도되었던 다양한 형식 가운데 제언체(齊言體)는 매 구의 첫 자를 일정하게 같은 글자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처 거론하지 않은 전통 잡체시도 있다. 대언(大言). 소언(小言)이니 위어(危語). 안어(安語) 등 수사적 측면에서의 분류도 있고, 오측(五仄). 오평(五平)이나 사성체(四聲體). 양두섬섬체(兩頭纖纖體) 등의 성률적 측면에서의 분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검토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see also: 언어유희